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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산 | 남한산성 | 허난설헌 묘 | 천진암 | 곤지암 |
곤지암에서 양지면으로 이어지는 지방도로 옆에 위치한 태화산(641m)은 규모가 작아 어느 방향에서 산행을 시작해도 3시간 이내에 끝낼 수 있는 산이다. 정상에서 남쪽 방향 산자락에는 고려 충숙왕 12년에 일연선사가 창건하였다는 백련암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대웅전 아래에는 전설이 깃든 장군수가 있어 등산시 식수로 이용 할 수 있다.

관리 : 광주시청
주요문화재 : 백련암 부도 - 경기도지정 문화재자료 제 53호
산행코스
백련암 입구 → 백련암 → 백련암 입구 (4㎞, 1시간 30분)
바우산골 → 은곡사 → 주능선 안부 → 613봉 → 정상 → 백련암 → 절입구(도로) (6km, 2시간 20분)
바우산골 → 은곡사 → 주능선 안부 → 정상 → 추곡리(도로) (5km, 2시간)
남한산성은 북한산성과 더불어 남북을 수호하는 산성으로 백제 온조왕 13년에 축성되었고, 신라영역이 된 후 문무왕 12년에 토성으로 축성하고, 주장성·일장성으로 불려졌다. 이 곳은 삼국시대 이래로 우리 민족사의 중요한 요충지로서 삼국의 패권을 결정짓는 주요 거점이었다. 지금도 남한산성에 올라가서 북쪽을 보면 남한산성 아래로 초기 백제의 몽촌토성과 한강 건너 고구려의 아차산성, 그리고 그 뒤로 북한산성이 거의 남한산성과 일직선상으로 위치해 있음을 볼 수 있어 한눈에도 고대로부터 군사 전략상의 요충지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조선조 광해군 이후 이괄의 난을 치른 후 청나라 세력의 위협에 대비, 토성을 석성으로 개축, 인조4년에 준공하였다. 병자호란 당시에는 인조가 이곳에서 45일 동안 항전하다 항복한 역사의 연장이기도 하다.
수어장대가 위치한 전상은 해발 460m이며, 성은 봉성과 외성으로 구성되었고, 성곽의 둘레만도 11.76㎞에 달하며, 산성 내 면적만도 80만여 평이다. 유사시 임금이 이어할 수 있는 행궁을 비롯해 종묘, 사직, 관아, 재옥, 종각 등 없어진 것이 차례로 복원되고 있다. 산성축성 전부터 망월사, 옥정사 등 9개의 사찰이 있었으나 일제시 폭파되었다가 현재 망월사 등 4개의 사찰이 복원되었다. 성곽이 국가사적 57호로 지정되었고,수어장 대를 비롯한 6점의 도지정문화재가 있다. 그리고 남한산성은 불국토이기도 하지만 천주교 성지이기도 하다.

개원사 : 인조 2년에 세워졌으며 전국에서 산성 축성과 방어를 위해 동원된 승려들은 물론 전국 승려들을 총괄하던 지휘소.
현절사 :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가 온갖 회유와 협박을 받고도 끝까지 충절을 지키다가 처형을 당한 삼학사 홍익한, 윤집, 오달제와 김상헌, 정온의 위패를 모신 곳.
연무관 : 군사들이 무술을 연마하던 곳
침괘정 : 백제 온조황의 왕궁터가 있던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 건물은 조선 영조시대 중수했으며 무기 제작의 사무를 관장했던 곳으로 추정된다.
지정번호 : 사적 제57호
지정일 : 1963년 01월 21일
시대 : 삼국시대
[축성시기]
- 본성 : 인조4년(1626)
- 외성 : 숙종
- 구성 : 본성,외성(봉암성,한봉성), 신남성
[규모 및 시설]
- 총연장 : 본성 (9.05Km),옹성포함(11,755Km)
- 성곽의 높이 : 3-7.5m
- 시설 : 장대4(수어장대만 현존),접문4,옹성5,봉화대2,암문16
조선 시대 선조 때의 여류시인 난설헌 허초희(蘭雪軒 許楚姬, 1563∼1589)의 묘이다. 허초희는 양천(陽川) 허씨로 명종 18년(1563) 강릉에서 태어났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누이이다. 문장가 가문의 분위기에서 성장한 그는 어릴 때 오빠와 동생의 틈바구니에서 어깨너머로 글을 배우고 시인 이달(李達)에게서 시를 배웠다. 품성이 뛰어나고, 용모가 아름다웠으며 8세 때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梁文)]을 짓는 등 신동이라는 말을 들었다. 15세에 결혼한 후 원만하지 못한 가정생활로 자식들마저 모두 잃고 동생 허균이 귀양을 가는 등 불행이 계속되었다. 이에 삶의 의욕을 잃고 책과 글로 고뇌를 달래며 섬세한 필치로 비극적 삶을 여인 특유의 감상을 노래하여 애상적인 시풍의 독특한 시 세계를 이룩했다. 그러한 이유로 그가 지은 한시 213수 중 128수가 속세를 떠나고 싶은 신선사상을 표현하고 있다. 작품의 일부가 중국에 전해져 중국에서 {난설헌집}이 발간되어 격찬을 받았고, 1711년에 일본에서도 시집이 간행되어 애송되었다.
선조 22년(1589) 3월 19일 27세로 요절하였으며 유고집에 {난설헌집}이 있다.

허난설헌의 묘는 현재 묘역에서 약 500m 오른쪽에 있었으나 서울-대전간 중부고속도로 개설로 인해 1985년 11월 24일 현위치로 이전 되었다. 새로 조성된 묘역은 안동김씨 서운관정공파 종중에서 선영의 묘를 모두 이곳에 이장하였는데 허난설헌의 묘는 이 가운데에서 맨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묘 앞에는 1985년 11월 24일 전국시가비 건립동호회에서 건립한 시비가 서 있다.
시비중에는 곡자시(哭子詩)가 새겨져 있는데 그 대상인 어려서 죽은 두 자녀의 무덤이 난설헌묘 우측 전면에 나란히 있고 1978년 3월에 건립된 묘비가 있으며 그 비문은 문학박사 이숭녕씨가 지었다.

허난설헌은 조선 명종 18년(1563)에 동지중추부사를 지낸 허엽의 딸로 출생하여 선조 22년(1589)에 27세를 일기로 요절한 조선조의 대표적이며 천재적 여류시인이다. 본명은 초희(楚姬)이며 호는 난설헌, 본관은 양주이다. 또한 홍길동전 저자 허균(許均)의 누이이기도 하다. 강릉에서 태어나서 시인 이달에게 글을 배웠는데 천재적 시재를 발휘했으며 천품이 뛰어나고 아름다운 용모를 타고나 어렸을 때 여신동이라고까지 칭송이 자자하였다.

지정번호 : 경기도 기념물 제90호
지정일 : 1986년 05월 07일
시대 : 조선 1589년(선조 22)
전 세계 모든 나라의 천주교회가 대부분 다른 나라 선교사들의 전도로 시작되었으나, 우리나라 천주교회는 1779년에 이벽, 권일신, 정약종 권철신, 이승훈, 등 당시 저명한 학자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학문적 지식의 수준에 있던 천학(天學)을 천진암에서 자발적인 진리탐구를 위한 6,7년간의 강학회(講學會)를 통하여 종교적인 신앙의 차원인 천주교회로 승화, 발전시켰으며, 그 현장이 바로 천진암 성지이다. 어느 나라에도 자기네 나라 천주교 발상지는 없으니, 천진암 성지는 한국 천주교회에만 있는 자랑스럽고 거룩한 성지이다.
이 성지에는 한국천주교회 창립의 성업을 이루신 이벽, 권철신, 권일신, 이승훈, 정약종, 등, 한국천주교회창립선조 5위 묘가 천진암 터에 모셔져 있고, 조선교구설립자 묘역에는 정하상, 유진길, 및 한국 천주교회 창립선조들의 직계 가족인 정약전, 정지해, 이석, 등 선인들의 묘가 안장되어 있다.
강학회가 열리던 천진암 계곡 입구에는 강학 기념비가 서 있고, 한국천주교회창립사연구원, 성모경당(1천여명 수용), 광암성당(200여명 수용), 등이 완공되어, 순례단들이 미사를 봉헌할 수 있다. 30여만평 성역에 3만여평의 대성당 건립 터에서는 매년 수만명의 신도들이 모여 한국천주교회 창립기념행사를 거행한다. 천진암터를 정비할때 놋쇠향로 1개(높이 15cm, 둘레 45cm), 사기 그룻 1개, 글씨가 새겨진 기와장 조각등,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현재 이곳에 100년 계획에 의거 천주교 대성당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관리 : 한국 천주교 발상지 천진암 성역화위원회
주의 : 성지 근처이므로 취사, 고성방가, 야영 등은 금물
이바위는 원래 주변에 연못이 형성되어 소하천과 연결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복개되어 학교와 주택가로 변경되어 있다. 바위는 대.소 두 개로 약간 떨어져 있으며, 큰 바위가 높이 3.6m, 폭 5.9m, 작은 바위가 높이 2m, 폭 4m로 석질은 화강암이다. 바위 위쪽에는 광주시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약 400년의 향나무가 자라고 있어 신비롭게 보인다. 이 바위 인근에 신립 장군 묘소가 있는데 이 앞을 말타고 지나가면 말발굽이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아 말에서 내려 걸어 다니는 불편을 겪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어떤 이름 모를 장군이 지나다가 이 바위를 핀잔하자, 뇌성폭우가 쏟아지고 벼락이 내리쳐 바위가 갈라졌다는 것이다. 이 후로는 행인이 자유로히 왕래할 수 있었으며 이때부터 곤지암(昆池岩)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전설이 얽힌 바위이다.

근처 경안천과 합치는 곤지암천은 옛부터 아름답기로 유명하여 성남시.이천시등 인근 시군 주민들도 즐겨찾는 명소이다. 열미리 백인대를 굽이치는 깊고 맑은 沼와 곤지암보의 수영장과 인근 밤나무 숲엔 청소년 야영장이 상설되어 있고 늑현보 소쌍보의 맑은물과 대쌍령리의 낙화암과 보위의 남촌풀장과 보트장 도평리를 한바퀴 도는 물굽이는 아름다움의 절정을 이룬다. 넓은 하천변 모래밭은 캠핑장소로도 좋으며 병자호란에 얽힌 얘기들이 서린곳으로 시원함과 아울러 역사교훈도 된다. 가마소의 물굽이 칠사산자락을 휘감은 깊은 물은 거울과 같다.

경기도 문화재 자료 제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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